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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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독지가 장학금 받던 날 다짐, 30년후 334억 재단 만들어 실천”

2017-12-20
▲  도시재생에 민간의 창의력을 보태면 서울도 파리나 뉴욕 같은 누구나 찾고 싶은 도시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하는 문주현 엠디엠·한국자산신탁 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카이트타워 옥상에서 두 팔을 벌려 도시를 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문주현 엠디엠·한국자산신탁 회장 

검정고시후 늦깎이 대학 입학  학비없어 힘들 때 도움 받아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 넘고  IMF에 잘나가던 회사 부도  

원룸서 부동산개발회사 창업  10억 수익올려 장학재단 설립  

10년만에 적립금 300억대로  2215명에 40억 장학금 지원  

“외줄서 떨어져도 사방이 갈곳 개천서 용 날 판 만들어줘야”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멍텅구리 배에서 손을 내밀어 김발(김 홀씨가 붙어 자라도록 설치한 물건 )에 붙은 김을 뜯는 손은 얼기 일쑤였다. 김을 뜯지 않는 날은 매생이와 미역을 채취해 새벽시장에 내다 팔았다. 뒷산에 올라 땔감 하는 일은 일과의 일부일 정도로 머슴 같은 생활이었다. 반농반어(半農半漁)의 마을 전남 장흥군 관산읍 외동리 어은마을의 그해 겨울은 그렇게 눈코 뜰 새 없는 노동의 반복이었다.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한 갯일(바다 관련 일)과 농사일에 지쳐가던 어느 날 직업훈련원생 모집 소식을 접했다. 무작정 고향을 떠나 1년 과정의 광주직업훈련원 기계과에 원서를 냈다. 하지만 갯일에 지쳐 피해온 직업훈련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직업훈련을 받은 청춘들의 갈등, 패싸움, 기계를 깎고, 쇳물로 부품을 만드는 일 등은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했다. ‘이대로는 평생 공장 생활을 못 벗어나지….’ 하지만 길고 지루한 시간은 더디 갔다. ‘그래 늦깎이라도 대학에 가자.’ 주변 친구와 가족들의 ‘저러다 말겠지’하는 눈초리에도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스물일곱. 경희대 회계학과에 입학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군을 제대한 후 동년배보다 7~8년 늦은 나이였다. 날아갈 듯이 기쁜 날은 입학 이후 며칠뿐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탓할 여유도 없었다.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24시간이 부족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죽을 만큼의 역경을 견뎌낸 사람만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흘릴 것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경야독의 고학생에게 익명의 독지가의 손길이 미쳤다. 2년간 전액 장학금이었다.  

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카이트타워에서 만난 문주현 ㈜엠디엠·한국자산신탁 회장은 “독지가의 장학금을 받은 날 다짐했죠. 반드시 성공해 소외계층, 가난한 고학생들을 돕겠다고 가슴 깊이 새겼죠. 빚을 갚는 길은 그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자 공부에 집중,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좁은 길이 보였다. 당시 ‘조이너스’ ‘꼼빠니아’ 등 여성의류가 히트하면서 잘나가던 나산그룹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그는 영업직을 자원, 빼어난 실적을 올렸다. 곳곳에서 발휘한 실적은 일곱 번의 특진으로 돌아왔다. 호사다마(好事多磨)랄까. 대학생 때 걸렸던 폐결핵이 도져 쓰러졌다. 1년간 요양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사로 돌아왔다.

나산은 급성장하면서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개발사업을 맡아 우리나라 주상복합아파트 1호, 주거용 오피스텔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나산그룹은 30대 대기업군에 진입했고, 그는 30대 중반에 별(이사)을 달았다. 문자 그대로 샐러리맨 신화였다. 하지만 하늘은 탄탄대로만 주지 않았다.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나산그룹도 부도로 공중분해가 됐다.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고민 끝에 1998년 하반기 어느 날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칸짜리 방(33㎡ 원룸)에서 사실상 나 홀로 창업에 도전했다. 전라도 촌놈에 검정고시, 고학생, 부도난 회사 젊은 임원 출신으로 ‘돈도 배경도’ 없었지만, 창업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상호는 MDM. 가문(?)을 건 이름(MOON Development & Marketing)이었다. 외줄을 타는 심정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외줄을 타다 떨어지면 끝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촌놈들은 다릅니다. 외줄에서 떨어지면 사방이 갈 곳이라고 생각하죠. 외줄에서 추락한 순간 정신만 차린다면 죽음이 아니라 발돋움할 기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문 회장은 열정과 도전정신만 있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상황이든지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충만한 도전정신에 가문(MDM)을 건 상호 때문이었는지 사업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부동산업계에서 신용을 얻어 일감(부동산 분양대행)도 적지 않았다.

2001년 창업 이래 처음으로 10억 원이라는 돈을 벌었다. 3년 만이었다. 절반인 5억 원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 앞쪽을 딴 문주장학재단의 시작이었다. 재단 설립은 순전히 홀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임직원들이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첫 사업으로 얻은 10억 원이어서 너무나 값진 수익이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지체하다가는 임직원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발목이 잡혔을 것이다.

장학재단 설립이 알려지자 임직원들이 술렁거렸다. ‘대표가 회사를 키울 생각이 없다’ ‘회사를 접을 모양이다’ 등 온갖 말들이 나왔다. 일부는 실망한 나머지 회사를 떠나겠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문 회장 개인으로서는 ‘벼르고 벼르던’ 사회공헌의 시작이었다. 

“임직원들은 믿었던 CEO의 일탈(장학재단 설립)에 원망이 있었죠. 하지만 저로서는 가장 어려웠을 때 독지가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치면서 한 ‘나와의 약속’을 실천한 것입니다. 장학재단 등록증서를 받은 순간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웠죠. 환갑 전에 재단 적립금을 100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1957년생인 문 회장은 올해가 환갑이다. 그렇다면 재단 설립 시 스스로 약속했던 ‘환갑 전 적립금 100억 원’을 채웠을까. 놀랍게도 12월 현재 재단적립금은 334억 원이다. 연 운용수익만 7억7600만 원에 이른다. 재단은 올해 현재까지 2215명의 가난한 학생에게 40억 원의 장학금을 주었다. 문주장학재단은 장학금 수혜자의 성적이나 학교 등을 따지지 않는다. 수혜자의 가정환경, 의지 등을 우선한다. 흙수저들이 물 좋은 개천이라도 들어가서 성장하도록 ‘판’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구성원 대부분은 이른바 개천 출신이죠. 요즘 집안 탓, 출신 탓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오기와 도전정신을 갖고 인생을 개척해야 합니다. 개천에 물이 없어 용(龍)이 되는 길이 막혀 있다면 개천에 물(좋은 환경)을 넣어서 용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개천 출신들이 금수저와 경쟁할 수 있죠.” 

문 회장은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추구하는 기업인이다. 어떤 기업보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큰 기업보다는 존경받는 기업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문주장학재단 운영만으로도 타 기업과 기업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지만 후학 양성과 소외된 스포츠·문화산업 육성, 사회복지재단 등에도 수시로 지원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일 가천대에 발전기금 5억 원을 기부했고, 경희대에도 4억 원을 후원했다. 또 한양대에 매년 2000만 원을 기부하고 있다. 매년 검정고시 준비 학생 50여 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2016년부터는 전국 검정고시총동문회 총회장도 맡아 사소한 일이라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앞서 2014년에는 서울시청 시민청의 ‘서울 책방’에 1억 원 규모의 시설을 기증했고, 2012년에는 서울 관악구청에 1억 원을 들여 ‘용꿈 꾸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최근에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대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2억 원을 맡겼다. 또 그동안 소외돼 있었던 여자바둑에 8억 원을 후원, 세계 역사상 최초로 한국 여자바둑리그가 출범하는 산파 역할도 했다. 또 탁구 꿈나무 육성을 위해 서울시 탁구협회장을 맡아 후원금 1억5000만 원을 모금했고, 매년 초·중·고교 탁구선수 30명을 선발,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밖에 사회복지재단 ‘이삭의 집’과 ‘물망초’를 정기후원(올 12월 초 현재 약 1억2000만 원)하고, 119 안전재단과 협약해 홀몸노인과 치매 환자의 119 생명번호 팔찌 기부(1000개)도 하고 있다. 이런 문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은 시민단체들도 인정, 전국NGO단체연대는 2014년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로 선정했다.

문 회장은 “기업이나 개인의 성공은 사회와 주변 사람의 ‘훈짐(훈김)’이 있어서 이뤄진 것”이라며 “기업과 기업인의 목표는 이윤추구이지만 남은 이윤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12200103350300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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