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人워치]디벨로퍼 문주현의 '땅과 돈'
'한국의 트럼프' 문주현 MDM·한국자산신탁 회장
"미래를 읽어야 성공한다..아이디어가 곧 디벨로핑"
"대표사업? 히트작품이요? 하나만 꼽을 수 없죠. 지금껏 상품을 '그냥' 만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것 보세요, 에스컬레이터를 외부에서 3층으로 한번에 뽑으니까 3층 상가도 1층 상가와 다를 바 없잖아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때 그때 사업에 구현해 남들이 버린 땅에 새로운 가치를 심는 게 바로 디벨로핑이죠."
국내 최대 부동산개발회사인 MDM(Moon Development & Marketing)의 문주현 회장은 개발사업 얘기를 할 때 눈이 반짝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한 톤 더 높아지고, 메모하는 손길도 더 바빠졌다. 사업 현장을 소개할 때는 프레젠테이션하듯 대형 조감도 패널을 들었다.
'디벨로퍼 1세대'인 문 회장은 부동산 업계에서 신화적 인물이다. 옛 나산에서 샐러리맨으로 출발한 그는 몸담았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1998년 5000만원을 들고 MDM을 창업한다. 이 회사는 현재 부동산신탁사인 한국자산신탁, 여신금융사인 한국자산캐피탈을 자회사로 거느린 자산 규모 7796억원(2014년 말 기준)의 종합부동산 회사로 성장했다.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문 회장을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 카이트타워 20층,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돈 번 비결을 대놓고 물었다. 대담은 남창균 비즈니스워치 부국장 겸 산업1부장이 진행했다.
◇ "돈 번 비결? 반 발만 앞서라"
문 회장의 첫마디는 "돈 버는 거 간단하다"였다. 그는 "앞을 좀 먼저 내다보고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된다. 반 발만 앞서면 된다"고 했다. 그는 사업의 핵심은 '통찰'에 있다고 했다. "돈을 벌려면 인사이트가 중요하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정책과 시장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알면 길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그의 성공 비결이 와닿지는 않는다. 그의 사업 수완을 들여다봤다.
성공의 발판이 된 사업으로 그는 2007년 금융위기 직전 분양한 '부산 월드마크센텀'을 들었다. 10년 가까이 분양대행사업으로 종잣돈을 모은 그가 시행사업에 첫발을 들인 프로젝트인 데다 업계 최초로 건설사(시공사)의 지급보증 없이 시중은행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를 성사시킨 사업이다.
"(시공사) 지급보증 도장 하나 찍는 것으로 은행은 금리 손해를 보고, 시행사는 부대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사업성이 확실한 만큼 은행과 시행사가 리스크를 지는 대신 이자와 수익을 더 가져가자고 거래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득했죠."
전용면적 115㎡ 이상 대형 평형으로 구성된 496가구 규모의 이 주상복합은 당시 부산 아파트 시세(3.3㎡ 당 800만원)의 2배인 3.3㎡ 당 1600만원으로 분양가를 높여 잡았지만 조기에 '완판'했다. 계약금도 분양가의 20%나 됐지만 부산에서 보기드문 최고급 주상복합이라는 상품성에 계약자들이 줄을 섰다.
▲ 부산 월드마크센텀 |
수도권 신도시나 택지지구에서는 남들이 쳐다보지 않던 땅을 사들여 분양사업을 성공시킨 사례도 여럿 있다. 문 회장은 오는 9월 입주를 시작하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 주상복합 프로젝트를 "숨은 가치를 찾아내 돈을 번 사업"이라고 귀띔했다.
이 사업 부지는 경기도시공사가 '토지리턴제'로 내놨던 땅이다. 워낙 안 팔리니 나중에 되물리면 계약금을 돌려주는 조건을 단 것이다. 문 회장은 이 '리턴 증서'를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100억원을 빌려 사업에 착수했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경사면은 테라스 상가로 설계해 상품성을 끌어올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12년 분양 초기에는 미분양이 있었지만 입주를 앞둔 지금은 분양권에 웃돈이 1억~2억원씩 붙으며 광교신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판교신도시에서는 주상복합(판교 푸르지오 월드마크)을 분양 대신 임대로 공급하고, 서울 송파구 문정지구에서는 피트니스클럽, 사우나 등 고급 부대시설로 오피스텔(송파 푸르지오 시티)을 차별화 해 입주수요를 확보하고 상품 가치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얼마전 광교 호수공원 앞에서 분양한 주상복합 '광교 더샵 레이크파크'는 주부나 1~2인 가구의 가장 큰 고민이 '밥'이라는 것에 착안, 호텔식 식사제공 서비스를 판촉 포인트로 삼아 분양을 성공시켰다. 위례신도시 복합상가 '중앙타워'는 인기가 좋은 테라스 형태로 꾸미고 에스컬레이터를 외부에서 3층까지 바로 연결해 특화했다.
▲ 문 회장이 채택한 '아이디어 설계'. 위부터 ①주상복합 부지의 경사면 약점을 광장식 상가로 만든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 ②실비 개념의 식사 대행 클럽하우스를 도입한 '광교 더샵 레이크파크' ③지상에서 3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뽑아올린 '위례 중앙타워'(자료: MDM) |
◇ "디벨로퍼는 땅 가치 키우는 마에스트로"
문 회장은 "디벨로퍼라면 아이디어가 샘 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건이 다 갖춰진 비싼 땅에 아파트를 지어 파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진정한 디벨로퍼는 가치가 없는 땅, 사업이 어려운 땅에 아이디어를 불어넣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땅을 사서 사람들이 좋아할 설계를 뽑아 내고 인허가를 받고 금융을 일으켜 건물을 짓고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 분양하는, 모든 부가가치의 창출과정을 총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디벨로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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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끌어낸 개발사업의 부가가치는 회사 장부에 그대로 드러난다. MDM은 작년 기준 매출 3689억원을 일으켜 영업이익 1393억원, 순이익 950억원을 벌어들였다.
매출은 대형건설사들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이익은 비슷한 수준이다. 회사가 얼마나 알짜인지를 보여주는 영업이익률은 자그마치 37.8%에 달한다.
◇ "삼송 북부권서 새로운 주거문화 선보일 것"
요즘 그가 공을 들이는 사업은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6개 블록을 한꺼번에 매입한 고양시 삼송지구 일대다. 땅값 2850억원, 면적 10만9735㎡의 도시지원시설용지로 총 5000여실의 오피스텔과 업무시설을 지을 수 있는 역세권 땅이다.
이 역시 LH가 장기간 팔지 못해 골치를 앓아온 미매각 용지였지만 MDM은 바로 옆에 초대형 신세계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는 계획을 접한 뒤 투자를 확정했다. 이르면 9월부터 2~3인 가구용 전용 50~80㎡대의 주거용 오피스텔을 순차적으로 분양할 계획이다.
부동산 시장 전망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그리스 위기'라는 글로벌 이슈를 꺼내들었다. "EU(유럽연합)가 흔들리면 수출이 위축되고, 금융권에서도 독일 등 유럽계 투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하게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은 호황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다만 이런 외부 환경이 진행중인 사업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30~40대 연령층의 실수요가 충분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분양가를 책정할 것"이라며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 문주현 회장
1958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공부하러 도시로 간 두 형을 대신해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 뒤늦게 광주의 한 직업훈련소 기계과에 입학했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1983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 중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한 독지가의 지원으로 공부를 마쳤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해 부동산 개발사업에 발을 들였고, 7번의 특진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하지만 나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는 재취업을 고민하다가 1998년 서울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분양대행업체인 MDM을 만들었다. 2007년 첫 시행사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등 굵직한 주상복합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지금까지 4만가구가 MDM의 마케팅을 거쳤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출연금을 170억원까지 늘렸다.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2013년부터 서울시탁구협회 회장, 2014년부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