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회사 자본금보다 장학기금이 두배...
2009-12-12회사 자본금보다 장학기금이 두배…MDM회장의 나눔실천
“우리 회사 자본금은 10억원인데 장학재단 자본금은 20억원입니다.”
문주현(52) ㈜MDM 회장은 지인 사이에서 ‘돈을 잘 쓰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는 총 20억원 규모의 장학재단을 운용하는 ‘장학재단계의 큰손’이다.
문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인 ㈜MDM의 자본금은 10억원. 장학재단의 자본금이 배 이상 많은 셈이니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사업가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문 회장이 장학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 데에는 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할 뻔한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1957년 전남 장흥의 가난한 농가에서 5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가업인 농사일과 김 양식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을 때는 견디기 어려웠다. 동급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그는 논으로, 바다로 향해야 했다. 고등학교에서 보냈어야 할 3년간 그는 홍수나 가뭄ㆍ태풍 등 자연과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거듭했다.
동급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즈음 그는 ‘하늘에 맡기는 농사나 김 양식은 비전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전남 광주시에 위치한 광주직업훈련원에 국비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고생이 끝나지 않았다. 하루 8시간씩 선반으로 밀링 작업을 하다 온몸에 쇳독이 오르기도 했다.
직업훈련원에서 기능올림픽 훈련을 받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중졸인 자신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취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직업훈련원을 나왔다.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서라도 공부를 더 해 대학에 들어가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하루 15시간씩 독하게 공부한 그는 검정고시를 가볍게 통과했다. 그러나 이미 입대를 해야 할 나이가 됐다. 제대 후 다시 학업에 도전한 그가 대학 배지를 단 건 1983년이었다. 나이 스물일곱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합격한 것이다. 복학생들과 섞여 있어도 왕고참에 속할 만큼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공인회계사가 되겠다’는 당찬 목표도 세웠다.
그런 그에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대하던 대학에 들어갔는데 몸에 병이 든 것이다. 폐결핵이었다. 등록금을 구하겠다고 먹는 것을 아껴가며 힘든 일과 학업을 병행한 탓이었다. 1년 반 동안 약을 먹다 보니 독한 약에 소변 색깔마저 붉게 변했다. 건강이 안 좋아 누워 있어야 했고, 일을 하지 못하니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공인회계사도, 대학도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따뜻한 손길을 내민 이가 있었다. 가장 필요할 때 찾아온 온정은 그를 ‘자선사업’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당시 한 지인이 ‘봉신장학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소개해줬어요. 그는 ‘주로 서울대와 한양대 공대 쪽을 지원하는 재단이지만 네 사정이 딱하니 한 번 밑지는 셈치고 지원이나 해보라’고 알려줬죠. 그의 말에 자기소개서를 써서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재단을 찾아갔고, 당시 이사장이 나를 보더니 면담을 받아주시더라고요. 그분 말씀이 제가 쓴 자기소개서를 읽어 보고 ‘이런 학생은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네요.”
가까스로 장학금을 받고 서른한 살 나이로 졸업한 늦깎이 고학생은 졸업 후 취업도 순탄치 않았다. 나이가 많다 보니 어느 회사에서도 신입사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던 것. 이곳저곳 원서를 내던 그를 받아준 곳은 당시 연매출 2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이었던 나산실업이었다.
대졸 공채 1기로 나산실업에 입사한 그는 부동산개발팀에 발탁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성실하게 일한 덕에 주임, 대리, 과장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던 그는 입사 7년 만에 특진만 7번을 거듭, 이사로 승진하는 ‘기록’도 세웠다. 나산그룹 역시 주상복합 디벨로퍼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으며 재계 순위 30위권까지 오를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7년 IMF가 찾아오고 건설경기가 최악에 이르면서 나산그룹도 부도를 맞았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0년간 젊음을 바친 회사를 나온 그는 1998년 4월 20평 원룸에서 부동산마케팅 전문회사인 ㈜MDM을 창업하면서 ‘돈 버는 사업가’로 새 삶을 시작했다.
마침 분양가자율화가 시작되는 시기였는데, MDM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부터 히트를 치기 시작해 서초동 ‘슈퍼빌’, 목동 ‘하이페리온’, 분당 ‘아이파크’와 ‘파크뷰’ 등 내로라하는 부동산마케팅을 모두 성공시켰다.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문 회장 머릿속에는 대학 시절 자신을 도왔던 ‘봉신장학재단’이 떠올랐다.
“돈을 벌면서 대학 시절 제가 도움의 손길을 받았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여유 있는 생활을 하게 된 만큼 남들을 도와야죠. 문주장학재단은 창업한 지 3년 만인 지난 2001년 10억원을 출연해 만들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문주장학재단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학생 선발과정부터 ‘성적’은 아예 배제한다. 수도권과 고향인 장흥에 소재한 중고교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은 결손가정이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만 수여된다. 대학생 중 장학금 수혜 대상은 모교의 회계학과 학생 4명, 서울대 건설산업 최고전략 산업과정 학생 2명이다.
문 회장은 “제가 그런 입장에 처해본 적이 있어서 압니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가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깝지 않나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이런 문 회장의 생각에 직원들도 자원봉사로 발벗고 나섰다. 직원들이 장학재단의 업무를 도우면서 경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현재 문주장학재단은 수익의 99.9%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장학재단 설립 조건상 수익의 70% 이상 주게 돼 있지만 ‘이왕 좋은 일을 하는 김에 끝까지 돕자’는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지난 8년간 문주장학재단은 경희대를 비롯해 15개 대학과 수도권 4개 고등학교 재학생 110명, 그리고 장흥 내 초중고 12개 학교 재학생 600여명 등 710여명의 학생에게 총 4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문 회장은 모교인 경희대에는 2억원의 경영발전기금도 내놨다.
“올해 사업에서 이익이 나니까 또 욕심이 나데요. 그래서 최근 10억원을 출연해 자본금을 20억원으로 늘렸습니다. 앞으로도 해마다 10억원씩 더 출자해 환갑이 되기 전까지 자본금을 100억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는 재단의 자본금을 200억원으로 늘리고 예술이공계 학술 연구를 돕는 문화예술재단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더 열심히 지키겠죠. 하하하.”
김재현 기자(madpen@heraldm.com), 사진=안훈기자(rosedale@)